야구적 상상력의 최고봉 ‘ 애스트로돔 ‘

“1950 년대의 미국만큼 생동감 넘치고 즐거운 시간과 공간이 있었을까 ?

어떤 나라도 그런 번영을 누린 적은 없었다.  1951년 즈음에는 약 90퍼센트의 미국 가정에 냉장고가 있었다. 미국인이 세계 가전제품의 80 퍼센트를 독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의 재산이 나머기 95퍼센트 인구가 지닌 재산보다 많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도 대단했다.  잡지마다 거대한 유리를 씌운 식민지가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야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심리 세계를 지배했다.  물론 프로 풋볼과 프로 농구가 있었지만,  야구 시즌이 다시 시작될 때까지 추운 겨울을 지내는 데 약간의 도움을 주는 사소한 볼거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산책>

정치와 이념을 잠시 접고 본다면 195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아메리칸드림’이 살아 숨쉬는 시대였다.  동시에 야구의 위상 역시 지금과는 차원 이 달랐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거대한 유리를 씌운 식민지 ‘이야기라니, 누군가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던 당시 미국에 정말 ‘거대한 유리를 씌운 ‘ 야구 서식지가 탄생했다.

애스트로돔구장

빌 브라이슨이 찬양했던 바로 그 1950년대에..

당시 휴스턴 시장이던 로이 호프하인즈는  매주 막내딸과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만, 홈구장인 버팔로 스타디움에서 각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더위, 습도, 그리고 모기의 삼중고 때문이다. 여기에 비까지 내리면 모처럼 마련한 자리가 허탈하게 끝나곤 했다.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아무런 방해없이 보내고 싶었던  딸 디니는 별생각 없이 한마디 던졌다.

” 아빠, 왜 야구는 실내에서 못 해요 ?”  이 질문이 에스트로돔 역사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로이 호프하인져 시장은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보면서 그의 돔구장 구상은 더욱 구체화도기 시작했다.

그는 콜로세움에서  강한 햇살을 막기위해 대형 천막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때 돔 형태의 실내 쇼핑몰 건립도 추진했던 그이기에 이론적으로 어떤 크기의 돔 구조물도 지을 수 있다는 답을 얻은 상태였다.

쇼핑몰은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의욕을 메이저리그 구단 유치와 돔구장 건설 쪽으로 쏟아 부었다.

때마침 에이저리그도 몸집을 불리는 시기였다.  1960년대 내셔널리그 구단증설이 결정되었고, 휴스턴에도 메이저리그팀이 창단되었다.

애스트로돔 이야기가 재키 로빈슨의 인생처럼 역사에 화두를 던지는 소재는 아니다.  특정 인물이 모든 것을 일궈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이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파격적인 상상력과 과감한 추진력에 때로는 유연함이 느껴지는 발상의 전환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이야기라고는 할 수 있다.

에버츠 필드나 크로슬리 필드처럼 미국인들만의 추억 속 야구장 이야기보다 애스트로돔은 확실히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이다

그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이 누군가의 행동 의지를 조금은 자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야구에 대한 진정성 있는 호기심이 어떤 일까지 가능하게 할까 ?  또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는 마음 한편으로 휴스턴이라는 지명이 사인 훔치기 사건이후 야구계에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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