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과 황영조

손기정과 황영조의 기막힌 인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아시아인이 우승한 것은 딱 두번 1936년 베를린의 손기정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황영조 선수 이 두명이 주인공 이다.

하지만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 새겨진 우승자 명단에는 손기정의 국적이 여전히 일본으로표시되어 있다.  1970년 8월 16일 새벽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 박영록 씨가 경기장에 몰래 들어가 끌과 정으로 5시간 동안 작업끝에  ‘JAPAN’ 을  ‘KOREA’ 라고 바꿨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와 수상 빌리 브란트가 이끌던 서독 정부는 ‘국적 변겨은 불가능하다’ 며 다시 ‘JAPAN’ 으로 되돌려 놓았다.

손기정과 황영조 두 사람 사이에는 56년 이라는세월의 강이 있지만 ㄷ 대회는 여러 관계로 얽혀 있다.

우승자가 나란히 한국인일 뿐더러 대회 날짜도 똑같은 8월 9일이다.  그뿐인가 손 선생이 시상대에서 월계관을 쓸 무렵인 (출발 오후 3시 2분) 오후 6시에 배턴 터치 하듯이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출발했다.

참가 선수는베를린이 56명 (27개국) 이고 바르셀로나는 2배인 112명(73개국) 이다.

한국선수 2명과 외국 선수 1명이 후반 레이스를 펼친것도 비슷하다. 날씨가 더운것도 닮았다.

베를린은 섭씨 21~22.3도에 맑고 건조한 날씨, 바르셀로나는 섭씨28도에 습도 80%의 후텁지근한 날씨.

바르셀로나에서는 29km지점부터 김완기, 황영조, 모리시타(일본) 3명이 각축을 벌였고,  베를린 에서는 35km지점부터 손기정, 남승룡, 하퍼(영국)가 삼파전을 벌였다.

시상식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베를린에서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두번 (1,3위)이나 올라갔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태극기 밑에 일장기 (2위) 와 독일 국기(3위) 가 올라갔다.  1936년 우리 민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제와 히틀러의 독일이 56년 만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시상대 위에서 태극기 밑에 일장기 (2위 모리시타) 와 독일국기 (3위 슈테판 프라이강) 가 오르는  것을 보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민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제와 히틀러의 독일이 이런 식으로 업보를 받는구나 생각했다. ” 라고 말했다.

그날 손기정은 1위로 결승선에 들어온뒤 기진해 쓰러진 황영조의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속울음을 삼켰다. 손기정은 당시 심정을 <동아일보>에 이렇게 썼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할말은 많은 거 같은데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가닥도 잡을 수 없었다.  태극무늬를 가슴에 단 선수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 ”

황영조는 시상식이 끝난후 스탠드에 있는 손기정에게 달려갔다.  손선생은 황영조의 손을 부여잡고  “더 이상 여한이 없구먼, 이제는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것 같아”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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